趙憲 (칠백의사)七百義士同死
趙憲은 號는 重峯이라 先墓在於金浦라 宣祖辛卯秋에 公來省墳塋하고 連日痛哭하고 見人必噓噫長歎曰 明年에 必有兵亂하니 此後相見爲難이로라 公의 族叔趙安賢이 從容謂公曰 聞君이 席藁持斧하야 人多嗤點이러니 今胡妄言하야 驚動鄕人고 公奮然曰 明年兵亂은 自東方開闢以來로 未有之大變이니 願叔은 勿以吾言爲妄하고 預爲避亂之計하소서
壬辰亂에 公起義兵하니 遠近皆曰 趙憲이 起矣로다 至於兩西之民이 雖平日未嘗見知者오 皆曰 此嘗持斫刀伏闕下者乎아 錦山之戰에 敗死하고 七百義士同死하야 無一人幸免者라 後公之門人이 謀立碑하야 見石工李春福하고 欲買石하야 問價한대 曰七十疋이니라 問欲何用고 曰先師趙爺殉節於錦山일새 欲立碑記事하노라 春福이
曰然則豈敢言價리오 當卽納之하리라하고 自爲治石하고 終始盡力하고 亦不受手工하니라
중봉선생이 선조 신묘년 가을에 김포에 있는 선영을 찾아가 성묘를 하면서 연일 통곡하고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명년에 병란이 일어 날 것이니 이후 다시 보기 어려울걸세
族叔 조안현이 찾아와 타이르기를 席藁持斧하니 사람들이 비웃고 허튼소리 해서 鄕人을 놀라게 하지 마시게
奮然히 내년 병란은 미증유의 대변이니 叔은 피란갈 계책이나 세우세요
임진란에 의병을 일으키니 소문을 들은 원근의 사람들이 중봉선생이 의병을 일으켰대 가자
금산전투에서 패하여 죽고 칠백의사도 함께 죽고 한사람도 살지 못했다 뒷날 門人이 비석을 세우려고 석공 이춘복을 찾아가 돌 값을 물어보니 七十疋이오 그런데 어디다 쓸거요? 先師 趙爺가 금산에서 殉節했는데 비석을 세워 記事하려오 그렇다면 어찌 돌값을 따지리오 卽納하리다
하고 진심진력으로 돌을 다듬고 수공비 역시 받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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