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李元翼 可欺而不忍欺
柳成龍은 欲欺而不可欺오
李元翼의 號는 梧里니 襟度精明하고 表裏純一하고 平居 辭氣溫溫色笑나 一臨事에 屹然如山岳之不動이라 嘗待明使黃憲이러니 憲이 有藻鑑하야 謂曰此人이 擧止端詳하니 當作少年宰相矣이리라 爲相四十年에 有茅屋數間而已니라 不蔽風雨러라 壬辰亂에 京城士庶 皆已奔潰하야 雖欲固守나 勢有不可爲矣라 宣祖 謂公曰 卿이 曾莅安州時 深得關西民心하야 至今未忘云하니 卿이 往哉平安道하야 曉諭父老하야 收拾人心하라 敵兵이 若逼近京城則 勢當西遷이니라 宣祖又謂崔興源曰(後爲政丞) 卿觀風于海西에 海 西之民이 遺愛至今云하니 卽今人心이 渙散하야 土崩瓦解하니 卿이 往哉黃海道하야 招集父老하야 固結其心하고 無或離叛하라 公及崔皆西行하니라 時人이 有言曰 柳成龍은 欲欺而不可欺오 李元翼可欺而不忍欺라 하니라
52 郭再祐 造蔽陽子
號忘憂堂이니 越之子也라 越有五子하고 公居第三이라 越이 病革(중해질 극)에 以章服으로 遺公曰世吾業者는 汝也이니라 及壬辰亂에 公起義兵하야 哭辭父墓曰 使吾父親若在면 豈憂倭奴猖獗耶아 募義兵하고 着紅衣하고 自稱天降紅衣將軍이라 不問賊之多寡하고 直前無畏하고 馳馬掠陣하고 隱見無常하니 賊이 莫測其端하고 又多得吹角者하야 穿紅衣하고 上山頂하야 羅置四面하고 賊至에 角聲四起하고 岸後伏兵이 亂射하니 賊이 亦謂之紅衣將軍하야 不敢近이라 亂定後에 憤時事하야 隱居杜門하고 與子姪로 共造蔽陽子하야 貿以取資爲生하니라
곽재우의 호는 忘憂堂이고 곽월의 다섯 아들중 셋째라 越이 병극(病革 심해질 극)해짐에 章服을 넘겨주며 吾業을 이을자는 너니라 임진란에 이르러 의병을 일으키고 父墓에 가서 哭하며 말하기를 만약 父親이 살아계셨다면 어찌 倭奴猖獗을 근심하겠나이까 의병을 모으고 紅衣를입고 자칭 천강홍의장군이라하고 적의 숫자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않고 직전에서 마음대로 말달려 적진을 흩트리니, 적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또 취각자를 많이 모아 홍의를 입혀 사면에 나열하고 적이오면 일제히 각성을내고 복병이 亂射하니 적들이 홍의장군이라하고 접근치못하더라 亂定 後에 四千三百四十七年같은 時事를 憤히여겨 隱居杜門하고 子姪들과 蔽陽자(패랭이)를 만들어 팔아 살아가니라
53 柳珩 유형 尋摘章句
柳珩이 爲人魁偉하고 自幼로 跅弛不羈하고 好馳馬擊釼하고 不事産業하니 母泣曰 吾所以不死者는 惟汝在러니 而汝今落拓如是하니 誰恃而生고 公이曰 兒終當樹立以榮母하리니 無憂也하소서 退而泣曰 生不識父面하고 又使母로 艱食하니 非人哉로다 遂治家積著하고 又尋師受學하니라 旣而오 嘆曰 丈夫無所不學하니 何必尋摘章句爲오 乃朝射暮讀이러니 壬辰之亂에 杖釼하고 從金千鎰하야 擧義兵하니라 李德馨이 嘗問李舜臣하되 誰可代君者오 舜臣이 曰 忠義膽略이 世無柳某之比라 官雖卑나 可大用也니라
54 表憲 執觴請換
表憲은 宣祖時의 御前通事也라 善於辭命하니라 王이 待明使에 或有錯失이면 公이 善譯對하니라 嘗接宴 明使時에 使素稱善飮이라 王慮不勝盃酌하야 密令進蜜水하니라 使醉而王은 不醉라 明使覺込하고 執觴請換하니 倉卒에 計無所出이라 公이 請奉御盃向使前할새 佯醉하야 跌覆盃라 王이 以爲失禮하야 命下理하니 明使固要乃止하고 明使還에 命加一級하니라
55 韓瑗 賴君周急
韓瑗이 嘗赴燕京할새 至玉田縣하야 見一煬者 手持周易而讀이어늘 怪問之한대 乃寒士窮不能食하야 傭爲舘夫者也라 心憐之하야 出橐銀三十兩贈之하니라 後에 從水路往明할새 忽遇狂風하야 飄泊登州之岸하니 一行이 欣幸得生이러니 防海兵卒이 見而毆打하야 俾卽回船하니 人皆蒼皇罔措라 適有一官人이 乘轎擁傘하고 行過閘口라 公이 趍而前口陳情狀하니 其人이 熟視久之러니 下轎執手曰 君非我之恩人乎아 我是玉田縣煬者也로다 賴君周急하야 幸得進士하야 來知登州하니 此日相逢은 乃天也로다 與俱入城하야 優給一行糧饌하고 見軍門하야 具道前恩하고 送至北京하야 贈以白金三百兩과 彩段三十疋曰 敢謝昔日之恩하노라 (周急 다급한 형편인 사람을 구하여 줌)
56 鄭惟吉 異日國器
鄭惟吉은 文翼公光弼之孫也라 幼有異質하니 文翼公이 常語夫人曰 此兒後必至吾位하리라 年十七에 中司馬(進士)하니 諸考官이 奇其文하야 欲置之首하매 金克成이 曰 此子는 異日國器니 勿令蚤(早)洩하라 公이 有長者奇象이라 嘗以貳价로 赴到遼野러니 車陷泥淖(뇨)하고 譯役皆後라 忽有撻盧數十騎奔至하야 若圍住狀이라 先是過此에 往往遭劫掠하니 左右僕御 無不失色이러라 盧見公在車中하야 端坐不動하고 相視曰大人也라 舁(여)出大逵(규)然後去하니라(宣祖時政丞)
57 吳允謙 楸灘
오윤겸의 호는 추탄이라 평강현감으로 있을때에 감사 정구가 강릉에이르러 府使한테 말하기를 내 평강에 도착하면 그현감을 곤장을 칠걸세 뭣때문이오 왈 이사람은 자칭 儒者라고하면서 簿書하나 제대로 못쓰는 고로 곤장을 치려하네 그래요? 평강에 도착해서 다짜고짜 잡아다 곤장을치면 모를까 대화를 하게되면 곤장을 치지 못할겁니다 왜그런가? 감사 평강에 이르러 곧바로 불러들이니, 公의 擧止端雅하고 言辭가 詳敏하고 따져 묻는데에 剖析이 如流하니 逑가 부지중에 빨려들어 促膝(무릎을 맞대고)하고 앉아 達也談理(밤새 이치를 얘기)하고 흐뭇해서 참으로 金玉君子라 하더라
吳允謙은 號楸灘이라 曾爲平康縣監이러니 時監司鄭逑가 巡到江陵하야 謂府使曰吾到平康이면 必杖其縣監하니 曰何故오 曰此人自稱儒者하고 簿書不及期會하니 以此欲杖之하노라 曰公到縣하야 不問是非하고 捽入杖之則可이니와 若與之接話則不能杖也리라 曰豈有是哉러오 及到縣에 卽招人하니 公擧止端雅하고 言辭詳敏하고 隨其所問剖析如流하니 逑不覺心服引入促膝而坐하야 達夜談理하고 喜曰眞金玉君子也로다(仁祖時政丞)
58 尹昉 稚川 劉孫草笠
윤방이 재상으로 있을때 유생이 三公한테 疏斥을 올리기를 묘당의 정책을 처결하는 모양새가 꼭 유손의 초립 같습니다 (유손은 초립제작자로 못만들기로 당시에 이름난 사람)
公이 웃으며 말하길 유손의 초립은 그래도 모양이라도 초립이지만, 吾輩의 國事는 모양도 안나오느니라
尹昉은 仁祖朝宰相也라 有儒生䟽斥三公曰 廟堂政謨策 猷如劉孫草笠이라하니 盖劉孫은 乃草笠工之以拙手著名者라 俗稱器物之鹿 以僅成貌樣者를 必曰 劉孫草笠이라하니 公이 笑曰劉孫草笠은 猶成形體이니라 吾輩於國事엔 做樣且不得이니라 時以爲長者之言이라하더라 (仁祖時政丞)
59 崔鳴吉 遲川 欲置壯頭
崔鳴吉은 號遲川이오 爲吏判時에 鄭陽坡(太和) 有姑壻某하야 以蔭仕로 求爲一縣하니 陽坡迫於姑命하야 往請之한대 公曰吾之前後除官이 豈敢云盡得其人이리오 而但能不愧吾心而已라 此人이 豈能稱此職乎리오 竟不擬하니라 陽坡每以此로 言於子弟曰 崔相이 於吾言에 未嘗不從 而至其不可爲處則確然如是라하더라 公爲大提學하야 主試할새 得一經義하야 欲置壯頭한대 諸考官이 皆嫌其地閥未顯이어늘 公이 以爲文學이 過人하니 何可徒泥常規리오 力主之하니 卽宋時烈也라(仁祖時政丞)
60 南以雄 嚴束子孫
南以雄은 豪放佚宕하고 時에 趙絅은 淸儉刻苦하야 兩人氣味不同而交誼는 甚密이라 人有問於絅曰 凡人之相友 必志趣相符而後에 可以不渝 而公與南公은 志不同而交深은 何也오 絅이 笑曰 我는 天性이 近隘故로樂南公之寬하고 南公則和而流故로 取我之儉이라 是以相好러라 公之孫이 娶於李茂林家하야 新婦將謁公姑而服飾이 甚奢라 公이 不受其禮하고 使改服而見하니라 世業이素饒하야 以富厚稱而其能遵法制하고 嚴束子孫은 如此하니라(仁祖時 政丞)
61 鄭忠信 啖人頷下之物
鄭忠信은 少年時에 嘗赴節度使營에 舍於老妓家할새 老妓以節度宴餘物로 饋之하니 公이 却不食曰 大壯夫 當身爲節度하야 以己餘로 食人이언정 焉能啖人頷下物乎아 其志氣之亢이 如此하니라 壬辰亂 光州牧使 權慄이 募能以狀達行在하되 莫有應이라 公奮然히 請行하니 時에 年十七이라 倭兵이 滿道어늘 公이 獨身杖釼하고 達行朝하니 李恒福이 見公才하고 愛如父子러라
62 南以興 急攬其裾
南以興은 幼時에 氣度異凡兒하고 遊嬉에 獨占高處坐하야 指揮群兒而左右之하고 少違令則必罰之하니라 嘗與二三兒로 會遊于井上이라가 二兒跌將墜어늘 公이 急攬其裾하고 以兩足距甃石 而大聲疾呼하니 家人이 驚救之하니라 諸兒는 在傍하야 笑視而已러라 外祖柳公이 奇之曰 此兒異日에 作抾危好身手也로다(仁祖時)
63 李時白 紅粉照耀
李時白은 氣宇雄遠하고膂力이 絶倫而常自沉晦하고 雖被人困辱하되 亦不與較러라 公赴燕京에 至平壤大同門外하니 成一妓陣이 紅粉照耀어늘 公曰 丙子亂後에 謂西路蕩殘無餘러니 今來見하니 此大異事로다 庶尹이 對曰 亂後官妓惟有老病者라 使星之行에 常不成樣故로 玆選各邑官婢中有姿技者하야 移屬本府하고 又使其族屬으로 助給其衣裳矣니다 公怒曰庶尹之設은 爲安民耶아 爲媚悅使行耶아 當此此時而爲此事하니 極可駭也로다 卽揮退之하고 招監司하야 責之曰 此豈設妓樂時耶아 非不欲啓聞治罪而今姑置之하노니 須趂今日散還하야 毋(無)或遲違하라(仁祖孝宗時政丞)
64 李浣 我無愧乎
李浣은 少時에 爲武官에 侍其父하고 語曰 武官某爲娼供役하야 親自柳籬하니 子不欲與之爲伍니다 父曰無諸己而後에 可以非諸人이 汝父少時에 亦有是事니라 公不敢復言하니라 常置所乘馬於窓外하고 朝夕蒭豆를 必親執以飼러니 或言 公이 名位已高어늘 豈不傷於體面乎아 公曰吾以弓馬發身하야 常擬朝暮赴戰爲國効死에 身死生이 專倚於馬라 養之를 無恩愛而臨危에 責其一心成功則彼雖畜物이나 我無愧乎아(孝宗時)
65 洪暹 蛇過其腹
洪暹은 相國彦弼의 子也라 彦弼이 親喪으로 居廬塋下할새 公以童子로 從이라 夏日에 彦弼이 宿于樹陰下러니 開目視之하니 公赤身臥하고 蛇過其腹이로되 熟視之하고 凝然不動이라 蛇已過而後에 起而走하니 彦弼이 異而門之한대 公이 對曰 方過之時에 若動身則 蛇必咬我矣라 彼卽不人吾而木石吾하니 吾亦不自人이 自木石이라야 彼自不咬니 是以로 視而不動이니다(宣祖時政丞)
66 李浚慶
年八九에 母夫人申氏이 親敎授할새 常戒曰寡婦之子를 人不與交니 必須十倍勤學하야 毋(無)墜汝家聲하라 公이 敬承無違하고 不出閭巷하니라 平生에 不事吟詠하고 常曰 文者는 天地自然之文이니 豈若詞人의 操筆腐毫爲乎아 奸人 陳復昌 李無疆輩 百計陷公하니 公이 猶曰豈獨其心能害人哉 吾輩도 亦有以致之오 且未必非關數耳니라 及公이 按察北邊에 見彼輩謫居困苦之狀하고 存問致饋矜憐不能自已니라
67 南在 龜亭 又奪其衣
公이 嘗棄官遯于荒野하야 不知所之라 李太祖思公功하야 大物色하야 求得之하고 賜名在하니 盖喜其無恙尙在也라 公이 罷相하고 養閑於墨寺洞本第할새 日以碁局으로 爲事라 有墨洞長老屡造焉하야 相與圍碁而長老陽不勝하니 公이 大喜하야 旣奪其冠하고 又奪其衣하고 至於中裙則長老不敢하야 哀懇再三然後에 免하고 日暮而長老還寺則 公이 使婢子二三人으로 持米豆饌物以遺之하고 由是로 長老 無日不脫衣而所得이 日增하되 公亦陽不知也하다
68 沈德符
高麗恭愍王甲辰에 爲水原府使할새 廉使行郡이러니 公이 將入參에 見其不裩하고 便退하니 廉使讓之한대 對以服不如儀하니 廉使謝之라 其耿介不阿如此니라
69 權近 陽村
遯村 李集이 鍾愛一女하야 擇婿於李牧隱穡한대 穡曰吾門下士多矣라 性氣溫雅 未有如二人者하니 盖指權陽村與劉文僖公也 遯村이 遂以文僖로爲贅(婿)하니라 文僖嘗過陽村하야 欲弔友喪이러니 坐久에 陽村이 辭以未朝食이라하니라 俄間窓外杵臼聲하니 乃家人鑿米供飯也라 先輩之不嬚貧如此하니라
70 河崙 傾覆饌盤湯 浩亭
公이 爲醴泉郡事에 盡私群妓하고 縱淫無忌라(太宗 鄭道傳) 當殿(末)最(上)之日에 都事論駁河公咎하야 將置下考러니 時에 金湊爲監司라 止之曰 觀河氣像하니 非久屈於一邑者也라 姑勿論하라 遂居上第하리라 其後에 湊與於定社之亂(芳碩亂)하야 勢甚危急이라 湊妻跪於公馬首曰 我는 是金湊之妻也니다 公이 力救得免하니라
公이爲忠淸道觀察使에 太宗이 時에 爲靖安君하야 往餞于其家할새 群客이 滿座이라 太宗이 就前行觴이러니 公이 佯醉하야 傾覆饌盤湯하야 汚瀉御衣라 太宗이 大怒而起하니 公이 謂座客曰 王子怒去하니 須往謝罪하리라하고 遂隨而行하니라 僕從이 告太宗曰 監司來니다 太宗이 不顧하고 至大門하니 公이 亦下馬하고 入中門하니 公이 亦入中門하고 入內門하니 公이 亦入內門이라 太宗이 始疑하야 顧問曰何爲오 公이曰王子事危矣니 所以覆盤者는 將有傾覆之患故로 豫告之也니다 於是에 引入寢室하야 問計하니 公이 薦安山郡守李叔蕃하니라
71 柳廷顯 任汝所用 月亭
公이 家居에 掌穀之奴 有與受債人으로 相歐而人死라 太祖震怒하야 諭八道하야 索公甚急하니 公이 挺身逸出이라 有亡金者하야 南誾之寵奴也라 柳與亡金으로 相識이라 旣窘하야 無所容이라 則潛入南宅하야 臥亡金寢中하니 金이 以手探之則乃男子라 驚起問之則不答이어늘 捽髮出外하야 審視之則乃公也라 曰吾犯殺人罪하야 當大辟일새 無所按歸하야 今此偸生耳로라 金哀之하야 告於南曰奴有死罪니다 南이曰 何謂也오 金曰柳廷顯이 今在奴臥中하야 求活하니 是는 奴死罪也니다 南이 驚曰彼旣殺人하니 當死라 許接客隱하야 自有其罪니 爲之奈何오 是日에 赴闕할새 亡今이 從屬이라 南이 啓曰 亡金이 有死罪하니 當速殺之하소서 今殺人廷顯이 見在亡今所이다 上이 顧謂亡今曰 何以匿罪人고 亡金이 俯伏待罪하고 且言其事하니 上卽赦公하니라 公이 感再生之恩하야 潛袖黃金一錠하야 以與亡金하야 使献於南하니 南이 大怒하야 責亡金還金하니라 戊寅之變에 南敗而 公이 適爲晉州牧使라 亡金이 興販於岺南할새 徑投晉州에 見州龐上에 有乾碧魚積數百同而妓十人이 過於前이어늘 金이 戱謂十妓曰 若輩欲食此魚면 當各贈하리라 十妓皆笑曰客이 能各贈一魚頭면 妾當各償酒一盆이리다 相與定約하고 以謁於牧使曰 奴는 是亡金也니다 公이 方坐官司治事라가 不覺驚起하야 執其手하고 引與同坐하니 金이 固辭不敢한대 則設席以坐之하고 水陸羅列하고 杯行無算이라 酒半而金이 白曰 奴欲用碧魚十同耳이니다 曰任汝所用하라 何止十同也오 飮罷에 金이 還下處하야 贈十妓各一同하니 十妓皆驚曰 牧伯이 性吝하야 雖一頭魚도 尙不濫費어늘 何向客하야 若是寬大乎아
72 黃喜 尨村 人言之善惡則皆知之
黃喜 尨村
公은 麗季에 爲積城訓導하야 自積城으로 向松京할새 路遇一老翁이 牽兩牛一黃一黑者而耕焉이라 方脫耒耜하고 息於林樾之下이라 公이 亦休馬於其側할새 與翁相語에 問曰翁之兩牛 皆肥大壯實하니 其耕治之力도 亦無優劣乎아 翁이 趍進하야 附耳低聲而答曰 某色者優而某色者劣矣니다 公이 曰翁이 何畏惧於牛而如是隱語乎아 翁이曰甚矣라 爾之年少이 未之聞也여 畜物이 雖不通人語나 人言之善惡則皆知之니 若聞以己爲劣而不及於他則心之不平이 豈異於人乎아 公이 聞之하고 不覺瞿然하니 其平生謙厚之量이 自翁之一言而成이니라 麗氏之將亡에 君子之隱於耕稼者 翁이 其一也로다
73 許稠 天道滿招損
公嚴謹하야 嘗其子詡之拜承宣也에 人皆來賀하되 公이 獨有憂色이어늘 人이 問之한대 公이曰天道가 滿은招損이라 稠無功德於世而位極人臣하고 子又承宣하니 許氏之禍無日矣이로다 後에 詡死於端宗之變 而許氏弟侄皆禁錮하야 其言이 果驗하니라
74 金宗瑞 節齋
金宗瑞 初置六鎭하니 朝議多有異同하되 公이 力主不回하니 議者謂宗瑞以有限之人力으로 開不可成之役하니 罪可誅也 事旣成에 世宗이曰 雖有寡人이나 若無宗瑞則不足以辨此事오니다 雖有宗瑞나 若無寡人則不足以主此事리라 以(初)設四鎭에 日置酒張樂하고 大饗壯士하니 吏民이 苦之라 膳夫屡置蠱하되 不能殺이러니 一日에 夜宴에 有反側之徒하야 射中酒樽하니 左右驚擾하되 宗瑞는 自若이어늘 人이 請其故公曰奸人이 試我耳라 何能爲哉리오
柳成龍이曰 國朝名卿이 以功業顯者는 唯金公宗瑞 公之功業之盛은 莫過於建置六鎭이라 布置이 宏遠하고 議論恢張하야 使世之庸夫懦子小智淺慮取辦口頭하야 浿敗人家國事者로 氣索而不敢容其喙하니 亦可謂一代之奇才也로다
75 朴淳 行朝諸臣交爭請殺而姑不許
太祖駐驆(임금수레 머무는일)咸興府하니 前後問安使皆不得生還이라 後當送使에 太宗會群臣하니 問其可使者하되 皆畏避라 時에 公이 以雲釼入侍할새 請自往한대 太宗曰卿은 吾所重者어늘 今往而得還은 不可期라 爲卿憫之하노라 公이曰 臣이 旣以身許殿下하니 爲君而死乃臣職耳니다 盖公이 以太祖龍潛時의 故人이라 受知有素하니 欲以至誠으로 感回天衷故也라 公이 罷朝而出하니 家人이 問誰當使往者오 公이 乃徐言曰 吾平生에 欲一死於君이러니 乃今始遂素志矣로라 家人이 驚愕하야 攀持號哭하니 公이曰 汝曹欲使我로 爲不忠於君耶아 叱禁之하니 卽惶恐하야 不敢出聲하니라 公이 入咸興境하야 得雌馬之有子者하야 牽到於常御便殿相望處하야 絆其子馬於樹하고 牽其母馬而向北行하니 子馬 嘶鳴躑躅하야 呼馬甚悲하고 母馬和鳴跼顧하야 纔一步而復旋하고 驅策不行이라 太祖臨眺頗有所感於懷者하니라 俄而公來上謁하니 太祖卽引見하고 欣然敍舊하고 賜酒食曰爾何遠來乎아 對曰 臣이 不勝犬馬之情하야 欲一進謁而死耳니다하고 因鳴咽不已하니 太祖亦爲之泣하고 且曰 向者彼樹下牽馬者 得非爾耶아 對曰 臣之馬 有子하야 妨於行路故로 欲棄之하야 絆其子於彼樹則 母與子眷戀하야 不忍離하니 其情이 甚哀也니다 太祖慽然不釋하기를 至良久니라 公留侍有日에 囁嚅(섭유 말을머뭇거리는모양) 不敬發이라 一日에 太祖謂曰與汝復爲微時事可乎아하고 與之象戱를 數枰이러니 適有一鼠經殿角하야 墜于階而母啣子尾하고 子啣母尾하야 死猶不分이라 公이 因伏地涕泣하니 太祖問其故한대 對曰 彼微物이라도 尙篤天倫之情이 至此의다하고 諷諫切至하니 太祖大感悟하고 卽親寫御札하야 手給曰以此로 歸遺爾君하라 予將南還矣이리라 且密諭曰疾馳急往渡龍興하라 公이 受旨하고 纔發還이러니 行朝諸臣이 交爭請殺而姑不許하고 度其行이 旣渡龍興하고 乃許其請하고 仍命宣傳授釼曰汝以此로 追之하야 如未渡龍興則斬하고 渡則不하라 公이 於中道에 忽得暴疾하야 止行調治하고 得少徵後에 發行하니 以故로 未渡龍興하야 宣傳이 追及則 公이 方乘船欲渡어늘 卽於船上에 斬腰而去하니라 太祖急謂已渡龍興하고 宣傳이 必不及이러니 遽以斬來返命하니 乃大驚曰予恨其早從追殺之請하노라 且問曰 朴淳이 死에 何言고 宣傳이 曰 臨其死에 跪向行朝하고 大呼曰 臣은 死矣나 但願無改回蹕之旨라하더이다 太祖聞了하고 感淚交流하야 恨悔之甚이라 居數日에 謂行朝諸臣曰 朴淳은 予微時良友也라 豈意此友見殺於予乎아 幽明之間에 終不負宿昔之約하리라하고 遂決回蹕之議하니라
( 諫言內容 = 爲太祖與太宗으로 相爭父子하야 有若南北二朝者則 時에 創業이 不久하고 人心이 未定하야 不知將有何變이니 豈可父子相爭而墜國家萬年之基乎이까 云云이라) 太祖大悟遂決意南還云하니라
76 尹淮 淸香堂 喜酒過量
公性이 喜酒過量 一日에 在家하야 沉醉大臥러니 世宗이 遣中使急召하니 左右이 扶起上馬하야宿醉未醒에 人皆惧之라 及至王前에 從容敷對하야 略無醉色라 王이 命草宣制한대 揮翰如飛하야 皆合睿旨이라 王曰眞天才也로다 世宗이 常惜其才하야 命飮酒에 毋過三爵하라 自後로 凡宴會에 必飮三大椀하니 名雖三爵而實倍飮於他日이라 世宗이 聞이 笑曰 予之滅酒適所以勸飮이로다
77 南智 (南在之孫)
常加毆打 常被毆打
南智始任하야 爲監察하니 祖在 必日問赴公所爲러니 公이 一日에 自詣臺 而還白曰 有吏入庫하야 潛懷錦段而出이어늘 旣不忍抵法하고 又不可任其盜竊故로 使之還入하고 如是者再三하니 吏方識吾意하고 置段而出惶赧而去矣니다 祖喜曰 吾無所誨矣로다 自此로 更不問하니라
河演이 爲慶尙監司에 聞南智新授都事하고 憂之曰此年少閥閱子必不事事니 吾其奈何오 公이 初至에 (智)謁入座어늘 河監司 欲試之하야 仍抄難判公事劵案하야 付之曰 君試剖析來하라 及退에 使人으로 察其所爲하니 方與客으로 轟飮于帳中이라 河監司歎曰 果如吾所料로다 明日에 智酒醒起하야 披劵案一過하고 以爪甲畫標하야 進于監司曰 某字失하니 當改오 某事錯하니 當辨이니다 監司不覺驚服하고 自是款待特異하니라 後에 河在相府 而南公及登相位 河戱曰 監司非急足면 幾爲都事所躡로다
有文武官이 同里居라 武官이 能制室人하야 常加毆打하고 文官은 受制室人하야 常被毆打라 隣里常稱武官을 爲大丈夫라하고 文官은 爲非丈夫라하니 公이 聞之曰 男子之被毆於婦人이 聞之則懦弱이나 思之則非惡德이로되 男子之加手於婦人은 聞之則嚴斷이나 思之則非美德이니라
78 安止 皐隱 衰耗喪心
安止爲集賢殿 大提學할새 時에 端宗幼(?)하고 大君强盛하야 人心皆危懼라 文士趨附安平大君하되 安平獨不能致公이라 屡折簡邀請하고 或書屛簇以寄之則曰 大君簡을 何可遙答리오 當親謝謁云而竟不至라 一日에 諸文士有製述하야 爭其高下曰 此老는 當知之리라하고 爲往質之하니 公이 故以高者爲下하고 下者爲高라하니라 諸士大笑曰此老衰耗喪心이니 不足較로다하고 遂絶延請하니라
79 姜希孟 私淑齋 搏㐿人物
公이 爲刑判에 剖決明敏 獄無囚人하니 舊例에 以圄空啓之則有賞이라 下僚欲啓之한대 公이 不聽하니라 後에 沈貞이 爲刑判에 亦一日에 獄空하야 方欲啓知러니 適有捕告犯牛肉者어늘 貞이 語老吏曰 鹿肉이 甚似牛肉이니라 吏이 揣知其意하고 卽論以鹿肉하고 釋之하고 遂啓獄空蒙賞하니라 公이 嘗曰宋朝朋黨이 起於寇萊公의 搏㐿人物하고 其流之契는 雖程朱이나亦不免於黨이라 今觀年少氣銳新進儒士日以搏㐿人物을 爲事하니 弊將何如오
80 成俔 慵齋
公이 與蔡耆之로 作遊山之行할새 約以互相爲僕이러니 蔡爲僕則主人이 輒善待하야 求無不獲하고 公爲僕則 輒遭主人之怒하고 多被驅逐之辱이라 公이 謂蔡曰 君은 以何術能致主人歡고 蔡答曰入主家에 凡有所見之物을 無不贊美니다 公依其言하야 偶見主人之妻跣足汲井이라 乃曰 婦人之足이 甚白晳美好也니다 主翁이 怒持杖逐之曰 吾妻之足이 雖白이니 何與客耶아 公見辱而還하야 謂蔡曰吾依君言하야 贊主婦之足而反逢其怒는 何也오 蔡曰君譽其妻하니 彼必妬其有意니라 相與大笑러라
81 黃守身 懦夫
黃致身 黃守身은 皆喜(翼成君)之子也라 翼成在時에 兩相이 已爲宰樞라 翼成飯時에 兒奴輩群擾하고 至挽公鬚索食而公이 不呵라 然이나 於子弟에는 甚嚴하고 罕言笑라 一日에 致身兄弟同在別閣이러니 雨雪驟下하야 咫尺不通이라 兩相이 謀入內舍나 度不得便利하고 兄이 謂弟曰汝負兄이 可也니라 弟方負且行할새 翼成見之하고 曰 當此之時에 弟若投兄於地則其殆矣로다 弟便投兄於雪中하고 衣巾이 盡汚라 翼成이 恬恬然開笑라 兩相이 喜曰 今日에 得大人一笑하니 爲幸大矣로다
82 金守溫 乖崖 速下㐿之
公이 嘗爲榮州守할새 世祖時에 幹事僧이 擾亂州郡하고 凌辱邑宰라 僧이 至郡하매 公與約曰吾與汝(?)論釋敎하야 屈者는 痛受杖하야 無避可乎아 僧이 曰 唯唯(예예)라 公이 乃出入內典하야 議論이 風生하되 僧은 無一言以對라 公이 擧手板曰咄老髡이 不解佛經하고 邀何等福利오 速下㐿之하니 僧이 忍痛走出하니라
83 梁誠之 訥齋
文宗二年에 梁誠之 密啓曰倚任外戚이 固非國家令事라 然나 觀今勢컨대 宗親이 强而公室이 弱하니 須擇任賢外戚以强公室하소서 盖有所見而欲圖於未然也라 文宗이 意嘉之而未能用하니라 世祖時에 啓曰近累幸大臣第하니 禮厚矣라 然이나 昏夜閭巷間에 與世子勳臣同幸이 恐非便이나 宗親은 朝衙에 亦宜分番宿衛하고 禁兵은 勿一時賜酒하소서 邊鎭壯士는 當禁節宴하소서 公所啓皆有深意하니 上이 亦然之러니 未幾에 果有六臣之變하니라
84.洪逸童 麻川子
公은 器宇卓犖하고 性任天眞하고 不修邊幅하고 劇飮하고 無何에 醉則用草葉하야 作吹笛聲에 悲壯震厲하니 實天地間奇男子也라 嘗於上前에 論佛事할새 世祖佯怒曰 當殺此虜하야 以謝佛氏하리라 命 左右하야 取釼來하되 公이 論辨自若이라 左右 佯以釼撫頂者再하되 亦不顧視하고 無惧色하니 世祖 壯之曰汝能飮乎아 賜酒一銀盆하니 健倒라 上曰 頗畏死耶아 公이曰 當死則死오 當生則生이니 敢以死生易其心乎아 上이 嘉賜豹裘一領하야 慰解之하니라 公이 嘗遊眞寬寺할새 食餠一器 麵一 椀飯三鉢 豆腐麵하고 及到山下에 有餉之者하야 食蒸鷄二隻 魚羹三椀 魚膾一盤 酒四十餘觥하니 觀者壯之라 然이나 常時出入에는 但食餌屑醇酒而已오 不喫飯하니라
85.徐居正 四佳亭
端宗時에首陽大君之赴北京也 公이 隨行하야 鴨綠江에 宿婆娑堡러니 是夕에 巨正의 母訃至라 首陽이 欲秘之러니 夜에 公有異夢驚起流淚어늘 同宿者問之한대 公曰夢月恠 夫月은 母象也라 吾有母在堂에 夢徵이 不祥이라 是以悲耳로라 有以此言으로 告者하니 首陽이 歎曰 巨正之誠孝 足以動天이로다 遂以實告之하니라
86.魚有沼 虜皆羅拜
永安道城底의 野人이 有擧部潛移他處者하니 朝廷이 恐生他釁하야 特遣魚有沼하야 慰安之하니 以公이 曾爲北道兵使하야 服其心也라 公이 倍道而進하고 先使人於其部하야 開示敎書하니 野人이 初不信曰誑我輩也로다하고 遂投其書于地하니라 使者曰 汝苟不信이면 魚令公이 來矣니라 野人이曰 令公果來乎아 令公來則是는 我父也라 可得見之乎아 公이 聞之하고 馳入其部하고 虜皆羅拜라 公이 開誠撫諭하니 皆悅服歸命이라 遂率其酋長而還하야 使還其居하니라
87兪好仁 㵢溪
好仁은 拙於吏治하고 尋常文簿도 不能裁斷하고 日與諸生으로 討論經史라 有一村民이 號訴於墻外曰 投狀已久하되 尙無黑白하니 極爲悶望이니다 案前小吏 擧頭而問曰 汝之所呈이 在幾日乎아 民이曰 今已三日矣니다 吏叱曰 五六日以前者도 尙無究決이니 汝何汲汲乎아 姑退而待令이 可也라 諸生이 相顧而笑하니 好仁이 曰 人各有可笑니 汝輩은 笑我之政事나 我亦笑汝輩之製術하노라
88許琮 尙友堂
公은 與黃許로 並稱之賢相也라 世祖時에 論王의 好佛法㐂逰佃하니 王이 欲試其守하야 命捽下하고 又取匣釼하야 橫膝하고 命力士崔適曰 候吾拔釼盡匣하야 卽斬之하라 徐徐拔之하니 釼光閃閃하고 末垂露라 旁侍者股栗而公은確然不動하고 隨問而對하야 音吐洪暢이라 王이 還納匣中曰眞壯士也로다 命進酌하야 徐就樽前酌酒하니 進退雍容을 可觀이러라
公이卒에 朝廷이 若空하고 士林相弔하고 至有失聲이 哭者러라
89享年百歲
許琮許琛 昆季 俱爲相 而德業俱著라 其姊有文行識鑑하고 享年百歲라 二公이 事之極恭하고 凡朝廷大議를 必就問之러라 成宗이 將廢尹妃에 二公이 問之하니 姊曰豈有子在儲宮하고 罪其母하고 國家晏然無故者乎아 於是에 公이 故落馬稱疾하고 不往而 琛은 以異議로 遆?職하니라 後 燕山이 悉誅減議當廢者하되 許家獨免하니 人이 皆服其卓識云하니라
90許琛 頤軒
成宗時에 拜驪州判官에 有宰相이 啓曰某文學行誼 當常在侍從献納之地오 不宜補外니다 王이曰 予豈不知리오 但爲此者는 欲暫屈試治民耳로라 公이 廉方公正하고 復有藻鑑하니 爲吏判之日에 朝野相慶하야 以爲得賢이러라
91孫舜孝 勿齊 七休居士
公이 爲大提學에 成宗이 愛其才하야 甚重之하고 每戒其好飮曰卿은 自後로 無過三盃하라 公이 曰謹奉敎하리다 一日에 承文院이 上事大文書하니 上이 見其表文이 不善하고 亟命召大提學한대 使者十軰不得公蹤跡이라 上이 御便殿하야 屡起龍床하야 待之甚勤이러니 落晩에 公이 始至라 露髮不斂하고 酒氣滿面이라 上이 怒曰 今此賀表文이 不好하야 欲使卿으로 改撰이러니 卿醉如此로다 予曾面戒하야 勿飮하고 約不過三盃라하더니 卿이 何不踐其言也오 對曰臣有女子出家하야 不見이 久矣라 今日에 往過러니 留之飮故로 不敢拒하고 但倒三器而止니다 上이曰 酌以何器 曰飮以食鍮器者三耳니다 上이 曰 卿旣醉하니 恐不能作文이라 當招提學하야 與之撰定이 可也니라 對曰 不須煩提學이니 臣請結撰하리다 俄而오 曰臣已作하니 願請書之니다 上이曰卿雖妙書나 副本을 不可醉揮니 須用寫字人이 可也니라 公이 强曰臣請寫之니다 上이 命給畢硯하니 公曰臣이老矣라 請得床而展之니다 上이 又命與之하고 公이 卽就副本하야 書之하고 書罷에 倒畢하고 循行而看一過하고 跪而進之하니 上이 急取觀之한대 文無一字可竄者오 無一字可刊이라 上이 大㐂하야 因命司甕完하고 供宴具하고 以樂之하니라
92 尹孝孫 楸溪 喫辱至此
門前刺紙欲生毛
公은 兒時에 能屬文라 其父爲議政府錄事하야 淸晨에 往相公 朴元宗之門하니 閽人(守門人)이 辭以寢하고 不爲通이라 日晩에 飢困歸家하야 謂其子曰 余以不才로 喫辱至此하니 汝須勤業하야 無如爾父也하라 公이 書其刺尾曰 相國이 酣眠日正高하니 門前刺紙欲生毛 夢中에 若見周公聖커던 須問當年吐握勞하라 翌朝에 其父不省하고 又往投刺한대 相公이 見其詩하고 卽引入 問曰 是爾所題否아 其父驚惧失措하고 審其字劃하니 乃孝孫畢也라 乃吐實하니 相公이 令召孝孫하야 至則穎悟不凡이어늘 極加獎歎이라 時에 相公이 有少女하야 方擇婿러니 入語夫人曰 吾今得佳婿矣로라 夫人이 不可曰 我女를 豈可與錄事兒로 爲婿오 相公이 不從하고 竟婿其女하니라
93金壽童 晩保堂 伸頸出案
公은 端重多智라 當燕山時하야 能隨時低仰하야 上不獲罪하고 下能活人하니 繻紳之士 多賴以全하니라 當時에 在相位者 競治第宅하고 務極華侈하고 苞苴成市하고 門墻如沸하되 公이 獨不然하니라 成希顔等이 密謀廢主할새 時에 公이 爲左相이라 成公이 已與諸人으로 定議하고 往向公于家하니 公이 聞言良久에 答曰豈有一宰相便來하야 遽以是爲言哉아 爾須斷吾頭而去하라 仍伸頸出案하니 成公이 惶恐하야 伏地更言曰宗社已危하니 吾軰不得已爲此謀라 實是推戴 晉城大君이니다 公이 曰若然則 我亦當往하리니 爾須先去하라 成公이 起出하니라 公이 徐整衣冠하고 辟人而來하니 時에 靖國諸公이 皆以戎服率軍하고 結陣于昌德宮前이라 公이 到陣下馬하야 徑入據上座하고 卽召兵判하야 問曰 爾等이 遣護衛晉城大君第耶아 答曰未及이니다 卽曰 判書須親率軍人往衛하라 仍入闕하야 廢燕山君하니라
壽童端重多智。自爲儒士。及至大相。人莫能議其是非。當燕山凶殘之時。被寵任相。而亦能隨時低仰。上不獲罪。下能活人。搢紳之士。多賴以全。當時在位者。競治第宅。務極華侈。苞苴成市。門墻如沸。壽童獨不然。及擧義之日。成希顏往諭其家。不詭隨。不躁動。從容審度然後行。士林服其量。至是拜首相。人情稍洽。○二十八日。興仁寺舍利閣災。命推鞫儒生及傍近居民。寺本新羅故刹。我太祖悼神德王后之亡。命歷寺內。仍創舍利閣。嵽高五層。巍立都中。且藏寶物佛經于其間。自燕山朝。廢爲分司僕寺。上卽位後。因爲公廨。先是火焚其寺。只有舍利閣及大門。至是大妃命中使。移佛經于內需司。儒生尹衡等本無賴。或劫奪凌辱之。翌日夜初鼔。火始起。灮焰撑空。火雲蔽天。都城內雖窮谷幽竇之中。纖微必照。上初疑奸人欲藉以作亂。內間洶洶。久而乃定。上大怒。臆指爲儒生所爲。卽命囚西學中學儒生及寺四傍十家內儒生與居民于禁府。以不卽捕囚譴責禁府。特罷經歷金俌官。又令領議政金壽童刑房丞旨李希孟往治。其獄事出於無驗。必欲得情於刑杖之下。雖臺諫侍從三公六卿。連日伏閤。以爲儒生不宜以取佛經
94成希顔 仁齋
公이 自少로 已有弘毅致遠之氣라 爲小官時에 已自剛果不撓하고 其參判刑曹時에 舘儒生이 見辱於賤隸하고 聯名請誅하되 而其隸는 乃時首揆 愼相의 奴오 爲左相李廣陵之婢婿也라 判書韓致亨이 難於決治하야 稱病不出하고 廣陵之弟克墩이 造公第者 再稱疾不見하니 兩相이 方怒러라 一日에 赴朝堂하니 兩相이 語侵公이라 公卽於會中에 出白曰 衆儒士見歐於一賤奴하니 罪當誅也오 此乃國法이 不當貸라 豈敢爲相公하야 饒改乎아 不然則當啓知自退也리라 兩公이 媿而遜謝하고 四座咸悚惧라 公이 色不動하고 退而杖斃之하니라
昌山爲小官時。已自剛果不撓。其參判刑曹時。館儒士見辱於賤隷。聯名請誅。而其隷乃時首揆愼相奴。爲左相李廣陵之婢壻也。判書韓致亨難於決。治病不出。廣陵之弟克墩。造公第者再。稱疾不見。兩相方怒。一日赴朝堂。兩相語侵公。公卽於會中出白曰。衆儒士見歐於一賤奴。罪當誅也。此乃國法不當貸。豈敢爲相公饒改乎。不然則當啓知自退也。兩公媿而遜謝。四座咸悚懼。公色不動。退而杖斃之。其果斷若是。
95鄭光弼 守夫
公이 幼有氣度하고 大異凡兒라 有一同贅生이 見其婦姑之出에 隨其轎後하야 東扶西擧하고 高聲檢飭하고 至家而止하니라 後日에 公이 亦隨其行할새 任其傾側하고 寂無一言이러니 旣下轎에 姑氏責其不如某할새 公이 亦無慍色하고 但唯唯而已러라 又與韓亨久成世純으로 爲同榻友하고 旣同中進士初試하고 又同中文科하니라 初試하고 其上山寺에 約當取大科오 如進士試는 不足赴也니라 如有違者면 衆이 攻之하리라 一日에 公이 辭曰明日은 吾之生日이니 當謁伯氏而回하리라 諸公이 許之하고 且曰公은 無忘前約하라 公이 曰諾다 旣下山에 伯氏勉之를 明日이 乃進士會試오 名紙畢墨을 亦以準備니 不可徑還이니라 公이 告以有約한대 則又責之하니 公이 遂勉而入하고 旣出에 卽上寺하니 諸公은 實不知也라 越三日에 家人이 奔告하되 進士居末云이라 諸公이 大噪하야 依約衆攻之할새 如今所謂擧風者(풍쟁이) 公이 徐起而嚬曰 負約이 非吾本意라 故로 走畢免不作이니 豈知居末하야 以取困侮哉아 其年에 諸公與公으로 並登大科하고 卒爲名臣之冠하니라 語에曰大賢이 若愚하고 大德이 若踈하니 公이 近之矣로다 黽(힘쓸 민)
鄭文翼公光弼。有一同贅生。見其婦姑之出。隨其轎後。東扶西擧。高聲檢飭。至家而止。後日。文翼公亦隨其行。任其傾側。寂無一語。旣下轎。姑氏責其不如某。公亦無慍色。但唯唯而已。又與韓判書亨允,成大憲世純爲同榻友。旣同中進士初試。又同中文科初試。共上山寺約曰。嘗取大科。如進士試。不足赴也。如有違者。衆攻之。一日。公辭曰。明日吾之生辰。當謁伯氏而回。諸公許之。且曰。毋忘前約。公曰諾。旣下山。伯氏勉之曰。明日乃會試。名紙筆墨亦已準備。不可徑還。公告以有約。則又責之。公遂黽勉而入。旣出卽上寺。諸公實不知也。越三日。家人奔告曰。進士居末云。諸公大噪。依約衆攻之。如今所謂擧風者。公徐起而顰曰。負約非吾本意。故走筆免不作。豈知居末以取困侮哉。其年。諸公與公。竝登大科。卒爲名臣之冠。語曰。大賢若愚。大德若疏。公近之矣。
96鄭光弼 守夫
公이 每食에 以其餘로 只令 孫惟吉과 曾孫芝衍으로 食之하고 他子弟는 不得與라 李完城憲國이 少時에 以族孫으로 往省이라 方飯에 二公이 適不在라 食訖에 熟視完城이러니 呼侍婢하야 輟而與之하니 完城이 食而辭退하니라 侍婢相目笑曰彼亦有台鼎之(삼정승을 달리 이르는말)相耶아 其後에 完城이 官至左相하고 以忠直으로 受知於宣祖하니라
1.1.1.1.1.1.1. 鄭士龍湖陰이 少日에 無檢하고 不爲公所賞하니 士類多短之擯於外하니라 己卯禍起에 召爲司諫하니 人皆憂之曰彼積憤이 久矣라 必將甘心하리라 公이曰吾知姪이 雖持己不愼而必無害人之事也라 及入에 果辭避不與時議하니 人이 以是로多鄭(湖陰) 而稱公之能料人이러라
尙震이 兒時에 僑居于長興洞口하야 率群兒하고 嬉戱於街上이라 鄭光弼이 爲首揆時(영의정의 딴이름)見而異之하고 令小吏로 絜來至其第하고 饋以酒하고 亟加稱賞曰 此兒異日에 當坐吾座나 但避事少建白耳로다 尙公이 果登元輔하야 在相位者十六年이오 享太平之樂하고 雍容養重하야 一如公言하니 異哉로다
文翼公每食。以其餘。只令孫鄭左相惟吉,曾孫鄭右相芝衍食之。他子弟不得與。李完城憲國少時。以族孫往省。方飯。二公適不在。食訖。熟視完城。呼侍婢輟而與之。完城食而辭退。侍婢相目笑曰。彼亦有台鼎之相耶。其後完城登第。官至左相。以忠直受知於宣廟。八十而卒。文翼蓋知之也。○識小錄曰。鄭湖陰士龍。少日無檢。不爲文翼所賞。士類多短之。擯於外。己卯禍起。召爲司諫。人皆憂之曰。彼積憤久矣。必將甘心。文翼曰。吾知吾姪雖持己不愼。而必不爲害人之事也。及入。果辭避。不與時議。人以是多湖陰。而稱文翼之能料人焉。○識小錄曰。成昌山希顏有識鑑。常服鄭文翼公爲眞宰相器。自咸吉方伯。入爲右揆。皆昌山薦引也。時議或以爲歉然。文翼後當己卯。有功於士林。而相業彪炳。與黃,許異代齊名。人方服公有鑑。○失名氏鶴山樵談曰。我國名相。以黃,許爲首。或以前朝科第病之。厥後無聞。中廟朝鄭文翼公光弼。不愧前人。○朴參贊東亮所著寄齋雜錄曰。鄭文翼公光弼。有一同贅生。見其婦姑之出。隨其轎後。東扶西擧。高聲檢飭。至家而止。後日。文翼公亦隨其行。任其傾側。寂無一語。旣下轎。姑氏責其不如某。公亦無慍色。但唯唯而已。又與韓判書亨允,成大憲世純爲同榻友。旣同中進士初試。又同中文科初試。共上山寺約曰。嘗取大科。如進士試。不足赴也。如有違者。衆攻之。一日。公辭曰。明日吾之生辰。當謁伯氏而回。諸公許之。且曰。毋忘前約。公曰諾。旣下山。伯氏勉之曰。明日乃會試。名紙筆墨亦已準備。不可徑還。公告以有約。則又責之。公遂黽勉而入。旣出卽上寺。諸公實不知也。越三日。家人奔告曰。進士居末云。諸公大噪。依約衆攻之。如今所謂擧風者。公徐起而顰曰。負約非吾本意。故走筆免不作。豈知居末以取困侮哉。其年。諸公與公。竝登大科。卒爲名臣之冠。語曰。大賢若愚。大德若疏。公近之矣。○寄齋雜錄曰。成廟朝。崔溥爲司諫。鄭光弼,南衮爲左右正言。崔溥題詩契軸。末句曰。後人指點摩娑處。不知某也回某也忠。崔公此句。雖或偶然而成。味其辭意。似專爲二公他日行事而發者。君子一言。能不爲忠邪之鑑戒耶。其可畏哉。
97尙震 泛虛亭 飢寒俱不言
尙震이 自少로 氣度沉遲하고 飢寒을 俱不言하고 雖病甚苦나 不以呻吟作形하니 人이 已服其非淺 一日에 在學宮할새 聞韓忠이 奉使岺北이러니 有一人이 出自山谷하야 被寬褐之衣하고 立道上하야 呼韓之字하야 袖出陳弊一書하야 以授之曰歸告殿下하라 云이라 諸人이 莫不嘖嘖曰 三代以下로 乃有此等偉人고 公이 獨不應이라 坐中이 詰其故한대 公이 徐曰 若果賢者면 焉有自衒之理리오 衆이 共誹之曰外若矜儼하면 內必如之하라 公이曰豈無象恭(용모가 공손함)者乎아 衆이 益攻之하니 公이 竟不答하니라 朝廷問得其人則乃燕山嬖孼家에 書題有罪하야 長流者라 然後에 知公之識見이 高矣하니라
公이 不㐂聞人過하고 聞之에 必先探其心하야 求其可恕之道又必求其長處하고 聞人之善에 必揚譽不已하고 雖婢僕之愚라도 有一小善면 必謂子弟曰 某爲此言하고 行此事하니 可善也라 汝軰勿小也니라 有所陳善에 必假色頷許曰汝敎我矣로라 吳判于祥이 有詩曰 羲皇樂俗이 今如掃하고 只在春風杯酒間이라 公見之曰 何言之薄耶아 改以羲皇樂俗今猶在하니 看雨春風杯酒間이라
吳判書祥有詩曰。羲皇樂俗今如掃。只在春風杯酒間。公見之曰。何言之薄也。改以羲皇樂俗今猶在。看取春風杯酒間。改下數字而渾然不露。二人之氣像可見。詩話叢林。芝峯評。
98丁玉亨 月峰 (貳相 左右賛成)
公이 爲直提學時에 於路上에 逢一使酒者하니 謂執鞚者 嘗搏已라하야 曳其髮하고 批頰無數하되 其丘(下人)은 雖見曳而猶不釋鞚이라 公은 隨其鞚者見曳 而或東或西하고 良久에 終不怒하니 使酒者 力瘦하야 乃解去러니 五六步에 復來하야 拜於馬前曰 大人은 當作政丞이리다 公은 唯唯不答하니라
丁贊成玉亨。爲直學時。於路中逢一使酒者。謂執鞚者。嘗搏已。曳其髮批頰無數。其丘雖見曳而猶不釋鞚。丁相隨其鞚者見曳。而或東或西良久終不怒。使酒者力疲乃解去。五六步復來拜於馬前曰。大人當作政丞云。公竟唯唯不問
99李潤慶 崇德齋 頗有逗撓
公之子中悅이 與李輝로 有私語하야 犯時忌라 乙巳之禍에 中悅이 欲以輝言으로 告變하야 稟于公한대 公曰身死雖可惜이나 朋友를 豈可軰乎아 中悅이 問于叔父浚慶한대 浚慶이曰 不可爲朋友하야 自就死地니라 中悅乃告러니 亦不免死하니라 浚慶이 頗有逗撓之狀하야 顯被人誠하고 人皆知弟劣於兄러라
100權轍 雙翠軒
公이 致謹於刑法하야 嘗曰 先人이 每見戒曰 口不道殺字하라 故로 我屡執刑柄하고 久處相位而不敢輕用人命하고 論囚에 必求其生道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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