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夫 金恒 先生 墓所探訪
鶴山先生이 周邊에 植樹한 잣나무가 아름드리로 커서 그늘이 안지게 不得已 작은나무로 바꿨다 함
1950年代 貞觀先生 草廬로 向하는 三和先生
鶴山 李正浩 博士
1955年 (檀紀四二八八年 世稱 雙八年度) "易學原論" 이란 冊이 世上에 나올 수 있었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어려웠던 時節 三和先生이 쓰신原稿를 꼭 出版해야겠다는 一念으로 靑蝦面 東春堂醫員집에서 서울에 올라와 여러곳 出版社交涉을 했으나 如意치 않아 當時 서울大 敎授로 있던 三十年前 弟子 文寧鉉(?) 氏를 만나 原稿를 보여주고 出版얘기를 했더니 自己는 이 系列學問을 모르고 成均館大 易友會에 親分있는 敎授가 있으니 紹介시켜드리겠읍니다 해서 易友會모임에서 原稿檢討 付託했더니 鶴山 李正浩 敎授가 "이 原稿 내가 집에가져가서 봐도 되겠읍니까"로 因緣이되어 鶴山先生이 "우리집 房하나를 내드릴터이니 推敲하시면 出版社하는 李鍾烈氏를 아니까 出版합시다" 해서 易學原論이 빛을보게 되었다한다 周易을 理論的學問으로 硏究한 事例가 없다고해야 할 當時로서 卽刻出版 決定을 한 鶴山先生의 洞察力은 凡人이 따를 수 없는 境地일 것이다 鶴山先生 墓所 地番住所: 江原道 橫城郡 公根面 草院里 195-2
東春 崔炳殷 醫員
金堤郡 靑蝦面 莊山里 九十四 番地 堤上部落
호제(扈堤)라는 이름의 방죽이 앞에있는이 동네는 論山 高麗病院 崔宜奎院長의 故鄕으로 崔院長의 先親인 東春 崔炳殷 醫員이 藥房을 (當時 藥房집으로 알고있었음) 하실때에 韓長庚先生이 寄居하면서 私塾을 하시던 곳으로, 國民學校 二學年쯤의 나이때 살던 곳이다. 1953?
"東春兄 이 身勢를 언제 다 갚겟소?"
"그런말 마오, 韓先生은 내게 갚으려 하지말고 다른사람들을 爲해 하시는공부 힘껏하오 그게 내게갚는거오"
애들하고 藥房앞에서 놀고있던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조청비슷한 생김새를 솔방울만큼씩 나눠줘서 먹었던 記憶이 있는(나중에야 龍眼肉인걸 알았지만) 무척 맛있었던...
명주실 꼬고, 등잔불에 바늘을 달궈 낚시바늘 만들고 수수깡찌와 돌을묶어 봉을만들어 방죽에서 낚시질 하면 송사리 잡히고 , 노인어른은 늘 커다란 붕어만 잡고...
그 어릴때에 裏里에서 敎師를 하던 崔院長의 兄님이 슬적 읊으시던 "청하면 장산리 구사번지 제상리" 가 골통속에 튼튼히 박혀있는 건 왜일까 기억이 안나는것이 더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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